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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자세히 알아보자

by 비라코 2020.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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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22일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를 방문하던 중 암살되었다.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라는 이름을 가진 저격수가 곧 체포되었고, 오스왈드는 구치소 이송을 위해 댈러스 경찰서를 나오는 순간, 분노한 시민
잭 루비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후 진상 조사를 맡은 조사위원회는 발표에서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렸고, 1976년 진행된 재조사에서도 케네디 암살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이 사건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과연...

이 모든 발표가 사실일까? 

 

암살 직전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케네디와 앞에 앉은 주지사



이 두번의 진상 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2003년 미 ABC 방송국 설문 조사 결과, 미 국민의 70%가 오스왈드 단독범행을 믿지않으며 배후에 강력한
지원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압도적인 다수가 철저한 수사를 통한 배후 세력 색출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모는 있으되, 그것이 밝혀졌을 때 직시하게 될 불편한 진실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밝힌 사건 전말은 이렇다. 

 

전직 해병대원이었던 오스왈드는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군부를 지지하고 1959년 소련에 망명한 골수
반 체제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케네디 대통령의 정책은 분노를 사기
충분했다.

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쿠바인 1,500명이 쿠바 혁명 
정부의 무력 전복을 시도한 1961년 4월 17일 피그스만 사건이나, 쿠바내 미사일 기지 문제로 소련과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62년 11월 상황, 1963년 말 남 베트남에 16,000명의 병력을 첫 파병한 케네디의 결정등을 보면서 오스왈드는 암살을 결심한다.


오스왈드가 범행에 사용한 저격용 총을 들고 찍은 사진



사전에 암살용 라이플 총을 구입한 그는 케네디 대통령이 탄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는 길목에있는 국정 교과서
보관창고 6층 구석에서 대통령을 기다린다.

경호진의 만류에도 Open car를 타고 예정대로 건물 앞 대로를 지나가는 케네디 대통령을 향해 오스왈드는 세 발의 총탄을 발사했고, 머리와 목 부위에 총탄을 맞은
케네디는 그자리에서 사망한다.

오스왈드는 유유히 총의 지문을 닦고 건물 2층에 있는
콜라 자판기에서 여유있게 목을 축이고 나서
암살장소를 벗어난다.

탈출과정에서 제지하는 경관 '티핏'을 살해하고
영화관에 숨어있던 오스왈드는 극장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어, 이틀 후 살해될 때까지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으며, 결국 범죄 내용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정 교과서 건물과 피격 지점



이상이 공식적인 발표 내용이다. 
일견 깔끔하게 잘 마무리된 조사 내용같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후, 수십가지의 음모론을 야기하게 된 이 발표내용은 사건 현장 및 증거들과 무시하기 어려운 심각한
불일치 현상을 보인다.

미국 정부가 오스왈드 단독 범행이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면 할 수록, 그리고 음모는 없었음을 확인하면
할 수록 더 많은 음모론이 생겨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케네디 암살 정황과 미 정부의 발표내용 중 어떤 점이
불일치 하는 지 정리해보자.

 

1. 피격 모습

 

케네디 대통령의 퍼레이드를 찍은 비디오 화면을 프레임별로 나누어서 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

Zapruder film 자료

http://assassinationresearch.com/zfilm/

 

Zapruder Frames - Costella Combined Edit

assassinationresearch.com


프레임별로 순서대로 보자.

 

Frame #305



케네디 대통령이 1차 피격된 상황이다.
고개가 앞으로 떨구어져 있고 재클린 여사가 놀라서
케네디를 응시하고 있다. 
앞 자리 오른쪽에 동승한 주지사도 피탄되어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다.  

 

정부 발표대로 해석하면 진행하는 차 오른편 건물 6층에서 쏜 총알이 케네디의 목부위를 뚫고 나가 앞에 앉은 주지사 몸에 박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정부 발표대로 해석하면 진행하는 차 오른편
건물 6층에서 쏜 총알이 케네디의 목부위를 뚫고
나가 앞에 앉은 주지사 몸에 박힌 것이다. 

뒤쪽이 아닌 오른편 위쪽에서 사격한 오스왈드의 각도를 감안했을 때 불가능한 탄환 궤적이다. 

실제 주지사 몸에 박힌 탄환 궤적대로 그려본다면 총탄은 케네디를 우측 상부에서 좌측 하부 방향으로 뚫고 나가
다시 오른편으로 꺽어서 주지사를 맞춘 셈이다.

총알은 토마호크 미사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방향을 꺽지는 못한다. 

1차 피격 때 한발 이상이 발사되었음을 시사한다.

 

Frame # 313



1차 피격 직후 케네디는 2차 피격을 당한다.

정확히 머리에 명중한 제2탄은 #313 의 끔직한 당시
모습처럼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하며 사실상
그의 목숨을 끊어 놓았다.

사후 케네디 시신을 찍은 X-ray 사진을 보면 2탄의
충격시 뇌가 거의 터져나가, 그의 머리는 거의 텅 빈
상태였을 정도였다.  


Frame #323



케네디 두상 전면부를 타격한 총탄의 충격으로 케네디의 머리가 뒤로 젖혀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정부 발표대로면 세발 모두 우측 후방에서 사격한
것으로, 케네디는 앞으로 꼬꾸라 져야 설명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발포시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머리에 피탄된 사람의 몸이 총알 진행방향 반대 방향으로 젖혀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말이 않된다.

즉, 그의 몸의 반동을 봤을 때 두번째 총탄은 전방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자면 오스왈드가 쏜 첫발은 케네디의
가슴 부위를 맞췄고, 동시에 또 다른 인물이 쏜 총탄은
빗나가서 주지사를 맞춘 셈이다.

곧바로 전방에서 날아든 세번째 총탄은 
케네디의 머리 우측을 꿰뚫었다.

비디오 Frame 별로 당시 상황을 분석해보면 정부 발표 내용과 당시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증인들의 잇단 죽음

 

케네디 암살 사건만큼 관련 증인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도 찾아보기 힘들다.

먼저 오스왈드는 사건 발생 이틀 후, 댈러스 경찰서
지하에서 잭 루비라는 일반인에게 살해됬다. 

대통령의 암살범이 구치소로 이송되는 날, 경찰서
구내에서 총을 든 일반인에게 살해된 것이다. 

이송 당일 대통령 암살범에 대한 보안이 납득되지 않는
수준으로 허술했던 점에 대해 조사위원회는 단지 해당
경찰서의 부주의였다고 발표했지만 역시
이해되지않는 설명이다.   


권총으로 오스왈드를 살해하는 현장



삼엄한 경비를 뚫고 경찰서로 잠입해 오스왈드를
살해한 잭 루비는 스트립 댄스가 주 종목인 나이트
클럽 사장이었다.

사실 애국자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서운 깍두기
형으로 더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양반이 뜬금없이 과도한 애국심을 발휘한 거다. 

이런 잭 루비역시 1967년 조사를 받던 중 석연찮은
죽음을 맞는다. 

그것도 의사의 주사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다.  

 

케네디 암살 사건과 관련해서 사망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잭 루비와 관련되 있던 사람 5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점이다.

오스왈드를 살해한 잭 루비가 단순한 나이트 클럽 보스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리 하비 오스왈드 : 케네디 암살범으로 체포된 인물, 잭 루비에게 경찰서에서 살해당함

2. 잭 루비 : 리 하비 오스왈드를 권총으로 살해한 인물, 복역중 암으로 사망

3. 짐 케데 : '댈러스' 기자, 케네디 암살 사건 관련 책을 쓰던중 아파트에서 목이 부러져 사망

4. 빌 헌터 : 케네디 사건을 취재한 기자, 1964년 4월 경찰 오발 사고로 사망

5. 톰 하워드 : 잭 루비 고문으로 1963년 3월 심장마비로 사망

6. 얼린 로버츠 : 잭 루비 이웃으로 의문의 심장마비 사망. 잭 루비에 대한 정보가 있었음. 

7. 베티 맥도날드 : 잭 루비의 나이트 클럽 댄서로 자살 처리됨.

8. 해크 킬람 : 잭 루비의 나이트 클럽 여 종업원 남편, 플로리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9. 월렴 웨일러 : 오즈월드를 태워 준 택시 기사, 교통사고로 사망

10. 에드워드 베나바이스 : 경관 '티핏' 피살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의 형, 총을 맞고 살해됨

11. 도로시 킬칼런 : 잭 루비와 단독으로 회견한 이후 사망

12. 리 바워스 : 오스왈드외 다른 저격범을 봤다고 주장한 목격자중 하나, 교통사고로 사망

13. 데이비드 패리 : 암살 사건 공범 혐의로 체포되기 전 의문의 죽음

 

이 정도면 증인 살해를 통한 조직적 은폐를 의심할
만한 정도가 아닐까 ?

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나간 것은
누가봐도 수상한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수가 있을까?

 

3. 오스왈드의 발사 능력




오스왈드는 해병대 재직 시절 마지막 사격 점수가
250점 만점에 190점을 기록했다.

명사수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런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향해 저격용 라이플로 5초
내에 세 발을 발사해서 그중 두발을 명중시켰다.

움직이는 표적을 두발이나 명중시킨 것도 대단하지만 세발을 정 조준 연사하는 데 걸린 시간도 세계 기록감이다.

'라이프'지에서 전 미국 라이플 협회 최고 명사수를 초빙해서 동일한 조건에서 3발을 발사하는 실험을 해 봤다.

총 6.2초가 걸렸다.  

 저격용 라이플은 기관총이 아니다. 

첫 발 발사후 진동이 사라지고 다시 표적을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움직이는 표적을 향해 5초
내에 발사한 세발 중 2발이 명중했다는것은, 오스왈드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세계 최고 클래스의 암살자였거나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저격수가 하나
이상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오스왈드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백발 백중의
명사수였다고 하더라도 '라이프'지 실험 결과에서 
보듯 믿기 어려운 추정이다.

 

4. 의사 및 기자들의 증언

 

캐네디는 피격후 Parkland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며, 최종 사망 선언이 내려졌다.

당시 사망을 선고한 '클라크'박사는 한발은 목 앞부분
넥타이 매듭을 관통했고, 또 다른 한발은 머리 우측을
관통했다고 증언했다.

응급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외과 의사, 클라크 박사
모두 치명상이 된 탄환은 전방에서 날아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소견을 밝혔다. 

신체내에 남은 탄두 궤적을 보고 내린 소견이다.

 일반적인 총알이 신체에 남기는 흔적을 감안하면
케네디의 후두부에 있는 큰 손상은 총탄이 뒤로
관통했음을 의미한다.

총알은 자체 회전수로 인해 몸에 들어갈때 흔적보다
몸에서 빠져나오는 부위의 상처가 훨씬 큰 법이다. 

의사들의 증언 내용이나 후두부 상처는 정부
발표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케네디 대통령의 시신



대통령의 병원 호송후 퍼레이드 카를 살펴 본
AP통신의 샌트루이스 기자, 포스트 디스패치사의
더드맨 기자 역시 자동차 전면 유리에서 탄환이 관통한
흔적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두번째 탄환은 전면에서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케네디 머리를 타격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케네디 시신을 보면 머리 앞쪽은 멀쩡하지만 뒤쪽은 반 이상이 날려간 모습을 볼 수 있다.  

 

5. 그외 정황들

 

암살 현장에서 다수의 용의자들이 체포되었지만
오스왈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신원정보도
남아있지 않다.

체포된 오스왈드는 12시간동안 경찰 심문을 받았지만
심문기록이 없을뿐더러 그 자신 역시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오스왈드가 암살범임을 증명한 유력한 증거중 하나로
채택된 사진(범행에 사용된 소총을 들고 찍은 사진)조차도 뭔가 어설퍼서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연출한 사진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암살을 준비하면서 그 증거가 되는 소총을 들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남겼다는 것도 납득이 않가긴
마찬가지다. 

 
암살 현장에 소총과 탄피 3개를 남기고 떠난 오스왈드가 그 긴박한 순간에 2층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를 뽑아먹고 있었다는 정부 발표도 실소를 자아내는 설명이다.

대통령을 암살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야 할 사람이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고 있었다니... 

 

도로위에 피격 지점이 표시되 있다. 이 마크는 현재까지도 도로위에 보존되 있다



이상의 여러 증거와 미심쩍은 정황들로 케네디 암살에는 최소 두명이상의 저격수가 동원되었고, 그중 한명은
케네디가 탄 차량의 진행방향 앞쪽 언덕에서 사격했음을 추정하는 의견들이 많다.

그리고 그 앞쪽 언덕은 당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안전구역이었음을 가정할 때, 사전에 조직적으로 암살을 계획하고 은폐한 배후세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도 무리는아니다. 

미국인들이 암살의 배후로 생각하고 있고, 이젠 케네디 박물관으로 바뀐 국정 교과서 건물 내에도 게시되어 있는 공공연한 음모론의 내용은 이렇다. 

 

1. 비밀 공작설 : 케네디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군부 및 남부 과격분자들의 소행 

2. 마피아 개입설 : 대통령 선거기간 많은 지원을 한 자신들을 배신한 것에 대한 복수

3. 쿠바 음모론 : 쿠바 혁명 정부를 전복하려 했던 케네디에 대한 복수 혹은 피그스만 사건 당시 약속했던 군사 지원을 철수해서 작전을 실패하게 만든 것에 대한 전복세력의 복수

4. 소련 음모설 :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실추된 소련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KGB의 암살

5. 보수세력 음모설 : 이 블로그에서도 설명했던 FRB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보수 세력의 암살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여러 조사 자료들의 기밀이
해제되는 2030년대는 되야 이중 어느게 정확한 배후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배후가 있었던 건지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존 F케네디 암살사건을 알아보았는데
케네디 암살현장 및 국정교과서 건물을 방문해서 직접 살펴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스왈드 단독범행은
말도 않되는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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