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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역사와진실

일제시대 창씨개명 이전에 우리는 이미 우리의 성씨를 버리고 창씨를 개명하였었다

by 비라코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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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전 한민족의 자발적
창씨 개명 역사



오늘의 포스팅은 보기에 따라 또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소 불편한 내용일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에 과거에 이런 내용의 일들로 인해서 현재까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바꿀수없는 성씨를 얻었다는 점을 알아두시기 바란다.

그리고 본 포스팅에 특정 정치인들의 이름이 나오지만 어떠한 정치적 치우침으로 작성한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두개의 일본이름이 있었던 박정희 전대통령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해방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다. 몇몇 재중동포들이 기억하는 ‘마쯔모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김대중 전대통령. 그리고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 전임 김영삼 전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으로 알려져 있고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로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에 의해 일본식 이름인 '쯔끼야마 아키히로'로 이름지어졌던 이명박 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 한동안 '아키히로'라는 이름이 네이버 검색어 순위 10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 명박 대통령은 '쯔끼야마'란 이름으로 개명한 할아버지에 의해 '쯔끼야마 아키히로'(이명박)로 이름지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일본 왕의 이름이 '히로히토', 왕세자 이름이 '아키히토' 였던 점을 감안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출생지가 일본이고 일본 이름이 있었다는 점 말고도, 그의 이름 속엔 다분히 일본 왕가에 대한 존경의 이미지가 녹아있다는 것이 그 논란의 중심이었다.

즉 일왕가의 이름인 '아키'와 '히로'가 그의 일본 이름속에 고스란히 다 담겨져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얘기들을 양산해냈다


위 내용이 사실이든 단순한 음모론이든 한국 사람들에게 성씨나 이름은 그 집안의 뿌리, 조상과 연관되어 무척 중요하게 취급되는 주제다. 

살면서 어디 성씨야 ? 본관은 ? 몇대손인가 ? ...이런 류의 뿌리찾기식 질문을 안받아본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내 말이 틀리면 내 성을 간다'류의 창씨 개명형 베팅한번 않해본 사람 없을 것이다.

 

일제의 창씨 개명 선전문



어쨌든, 이렇게 족보와 뿌리를 챙기는 한민족에게 가장 최근의 위기는 일제에 의한 창씨개명이었다.

1939년 11월 한국인의 황국신민화를 위해 추진된 일제의 창씨개명은 1940년 8월 10일까지 10개월간 협박과 강압을 통해 진행되었고 총 80%에 달하는 322만호가 창씨를 개명한다.



당시 여성들의 흔한 이름이었던 말자, 복자, 길자, 숙자, 정자..같은 이름은 일본식의 아키꼬류의 이름으로 개명하게된다.

그리고 금수 강산, 산천 초목, 세옹 지마, 쌍전 벽해, 청산 백수 및 견자(한자로 개자식)같은 이름으로 개명한 예능감 충만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 와중에 이광수처럼 창씨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행동하는 지식인(?)들도 있었다.

행동않하는 게 더 나을뻔했던 지식인, 이광수의 창씨 개명 관련 기사



사실 오늘의 포스팅 주제는 일제에 의해 강요된 이 시기의 창씨개명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먼 옛날에 우리에겐 잊혀진 창씨개명의 역사가 하나 더 있었다.

일제에 개거품 물어가면서 버티고 지켜낸 우리의 성씨가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과거 부끄러운 창씨개명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40년의 창씨개명이 총,칼아래 벌어졌다면 서기 600~800년경 이루어진 같은 땅에서의 창씨개명은 자발적 참여의 결과였다.

당시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보기 앞서 먼저 아래 두가지 질문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첫번째 질문.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 사극을 보면 낯선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을지문덕, 연개 소문, 을파소, 계백, 흑치, 상지, 주몽, 오이, 부분노, 마리, 온달, 검모잠, 부여풍, 걸걸중상... 도대체 적응않되는 이들 이름들은 뭐고 지금은 왜 없어졌나 ?

 

두번째 질문, 같은 한자 문화권인데도 일본인의 이름은 성2자 + 이름2자 = 총4자로 구성되고 한국인 이름과 중국인 이름은 성1자 + 이름2자 = 총3자로 만들어져 있다. 

왜 일본인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처럼 김,박, 이, 최씨가 아닌 독특한 성이 된걸까?
왜 성이 2자일까? 
한자 문화권에서 일본만 왕따 당한건가 ?

 
정답은 원래 우리도 우리만의 언어로 된 한민족 고유의 이름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과 맞짱뜨고 만주벌판에서 말 달리던 시절 불리던 우리 이름은 중국식 이름과도 일본식 이름과도 전혀 달랐다. 

당시 순 우리말은 존재했으나 표기할 문자가 없었던 관계로 그 당시 불리던 정확한 이름(발음)은 남아있지 않고 그 이름과 유사하게 한자로 표기한 이름들만 남아 전해진다.

그것들이 첫번째 질문에 나오는 사극용 이름들인 것이다.

 

드라마속 연개소문



실례로, 연개소문의 경우 여기 저기 한자 기록에서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이는 기록하는 사람마다 들리는 발음대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 우리말 이름들은 중국과 맞짱뜨기 힘들어지던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당나라의 유교체계, 이름체계, 복식, 행정제도등을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감소한다. 

즉, 순 우리말 성씨와 이름을 중국 스타일의 김, 최, 박같은 성씨가 밀어낸 것이다.  

 
스스로 중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사대주의가 심화되면서, 그나마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에 존재했던 각 나라의 토착 성씨들도 삼국통일후 중국향 성씨들로 수렴되갔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같은 순 우리말 명칭을 사용하던 신라 최고 지배자의 호칭도 중국식 표현 '왕'으로 바뀌게 된다.


좋게 표현해서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위한 실리 추구를 한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지금 한류처럼 당시 최고 유행이었던 중국 따라하기에 지배계급이 맹목적으로 몰입한 결과다. 

성과 이름은 좁게는 개인, 크게는 국가의 뿌리를 정의하고 있다. 

중국의 지배를 받는 내몽고 사람들이 중국식 이름으로 바꾸지 않고 몽고식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일제가 조선인에게 창씨 개명을 강요한 이유도 그것이다.

성과 이름은 그 나라마다 고유의 방식이 있고 또그 방식을 지켜내는 것이 그 민족의 얼을 지켜내는 것이다.

 
신라시대 우리 선조들은 그 중요한 민족의 뿌리를, 그것도 자발적으로, 공식적으로 버렸다. 

당시는 중국이 초 강대국이었으니 그럴수 밖에 없었을까?

어쨌든 그럼에도 독립적 국가의 형태를 유지해왔으니 잃은 게 없다고 봐야하나 ?

아님 당시 우리 고유의 성명체계는 의미가 없었던 것 일까? 

우리와 비슷한 정치적 환경에 놓여있었던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의 전통 황실복장



한국 못지않게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가 일본이다.

한데, 일본식 이름은 독특하다. 

일본인의 성에는 유달리 강, 하천, 하늘, 나무, 돌등 자연 및 지명에서 유래한 성이 많고 이는 일본이 중국에서 한자는 받아들이되 자신들만의 성씨 체계를 만들어 내고 고수한 덕분이다. 

당시 우리가 중국 성씨를 써야만 했던 강압적 외교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같은 영향권 내에 있던 일본은 어찌된 일인가 ?

바다 건너라고 중국이 봐 준건가 ?

애초 그런 강요는 없었다. 

심플하게, 우린 개념없이 받아 온 거고 일본은 생각해가며 받아간 차이 뿐이다.

일례로, 중국인과 한국인이 한자로 적힌 명함을 서로 건넬 때 이름만 봐서는 서로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할수 없다. 

하지만 일본인은 한자 이름만 봐도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중국인, 한국인과 달리 이름이 네자고 성씨가 독특하니까...   

 

일본의 네글자 이름이 들어간 명함



왜 우리 성과 이름은 부끄럽게도 중국과 싱크로율 100% 인 걸까. 

비록 삼국통일을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했다고 하더라도, 비록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시대라고 해도 무개념하게 중국식 제도를 그대로 들여와 사용했어야 했는 지 의문스럽다. 

왕이 사절을 보내 중국왕에게 절하고 저희 조정에서도 중국 조정과 같은 방식의 이름을 쓰고 옷을 입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일의 기록이 있다.

신라 이후 복식이나 이름, 관직명등이 중국과 같아진 것에 대한 설명은 왜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없는가? 

오늘은 일제시대 창씨개명 이전에 이미 우리 고유의 성씨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중국식 성씨를 따라한걸 알아보았다

만약에 당시 중국식 창씨개명을 안했다면 이 포스팅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중국식 성씨 대신 조금 투박하고 촌스럽게 느껴질지모를 '을지'나 '연개', '걸걸' '흑치' '명림'같은 고대 선조들의 성씨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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